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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충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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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홍식 (1872∼1937)
내용     [ 신홍식 (1872∼1937) ] 신홍식은 3·1운동때 민족대표 33인중의 한 사람이다.
한말의 국운을 걱정한 나머지, 30세에 기독교에 입교하여 선교활동을 통하여 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3·1독립만세운동 때에는 평양 남산현교회 목사로써 3·1운동의 추진계획 모의에 있어 기독교측 책임을 분담하여 활동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는 1920년 경성 복심법원에서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 혐위로 2년 형을 선고 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루었다.
그는 출옥후 인천, 원주 등지에서 계속해서 목사로 교회일로 시무하는 한편, 민족정신 고취에 힘쓰며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수차 구금된 바 있으나, 끝내 굽히지 않고 독립운동을 계속하다가 1937년 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