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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팽령(1480∼?)
내용    

전팽령은 1480년 11월 10일(조선성종 11년 경자년)에 옥천군 동이면에서 태어났다. 그의 자는 숙로(叔老)이고, 호는 송정(松亭)이며 본관은 옥천이다. 그는 연산군 갑자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중종 갑신년에는 문과에도 합격한 문인이다.

전팽년은 이로부터 벼슬길로 올라 내직으로는 형조, 공조의 좌랑과 정랑을 비롯하여 사도, 사성, 통례원의 우통례 등 여러 분야의 관리로 지내면서 주민을 위한 행정을 바르게 펴 나갔다.

또한 그는 외직으로 평양감사에 올랐는데 일찍이 단천군수, 삼척, 밀양등지의 부사를 거쳐 상주목사로 있으면서 오로지 자신의 출세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백성들의 억울하고 불편한 점을 파헤쳐 줌으로써 인정과 덕을 베푸는 관리로 지냈다.

당시 전팽령 목사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은 채, 남루한 옷차림으로 이웃아저씨 처럼 혼자 민정 시찰을 하면서 백성들이 마음놓고 편하게 나날을 보내도록 최선 을 다했다.

어느 날 전팽령은 주막에서 막걸리를 먹는 농부들 틈에 끼어 지나가는 나그네 로 행세를 하면서 그들과 같이 어울렸다. 그러노라면 사회의 밑바닥까지 상세히 알 수 있었고, 때로는 전팽령 목사 자신의 그릇됨을 비평하여 심지어 욕설까지 퍼부어도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장단을 맞추기도 했다.

그러다가 그는 중간에 살며시 막걸리 값을 지불하고 갈 길이 멀다며 작별인사를 나누면 농부들은 고개를 절로 숙이며 고맙다고 인사했다.

전 목사는 바로 관청에 들어와 그날 있었던 일들을 분석해 보고 잘못된 것은 하루라도 빨리 시정해주고 억울한 일이 있는 백성의 청을 모두 들어주고 백성들 의 손발 노릇을 해주는 어진 관리였다.

어느날 새벽, 전팽령 목사가 여느 때처럼 남루한 옷차림으로 순시를 하던 중, 아기의 울음 소리와 아낙네의 울음 소리가 함께 울려와 그의 귓전을 때렸다. 울음 소리가 나는 집 근처에 가까이 가 보니 아낙네는 아기를 부둥켜 안고 울고 있었다.

허름하게 옷을 입은 전팽령 목사는 문앞에 다가가 큰 기침을 하면서

"게, 아무도 없느냐?"

라고 몇 번을 불렀다.

"뉘신가요?"

전팽령 목사는 목을 가다듬으면서 점잖은 목소리로

"길가는 과객이오. 모녀가 하도 슬피 우시기에 여쭙는 바입니다."

그제서야 아낙네는 눈물을 거두고 과객에게

"실은 보릿고개라 식량도 떨어져 배를 굶주리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애기 까지 병이 나 밤새껏 울기에 저도 아기를 붙들고 한없이 울면서 오직 날이 새기만을 기다리는 중이옵니다."

전팽령은 방에 들어가서 아기의 모습을 두루 살핀 후, 자신이 갖고 다니던 허름한 봇짐 안에서 약을 꺼내어 아기 어머니에게 건네주면서

"이 약 좀 아기에게 먹이시지요."

라고 말을 건넸다. 아기 어머니는 과객에게 고맙다고 말한 후, 물과 수저를 챙겨서 아기에게 약을 먹였다. 어느새 아기는 회복하여 금방 생기가 돌면서 방긋방긋 웃어 주기까지 하였다.

이튿날, 전팽령 목사는 고을을 샅샅이 순회하면서 백성들에게 조그마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그 일을 바로잡아 주고, 나아가 해결해 주는 고을의 책임자이니 백성들 모두가 따르고 신임하면서 그를 무척 좋아했다.

이 같은 전팽령 목사의 미담이 돌고돌아 조정에까지 알려지기에 이르렀다.

전팽령은 37년간 관직에 몸담으면서 네 차례나 고을을 다스렸지만, 그에게는 항상 검소하였고 매사에 준비성이 철저한 사람이었고 행정 관리자에게는 항상 엄하고 사리가 분명했다.

한편 백성들에게는 관용과 인정이 넘치면서 손과 발이 되어 억울한 일이나 아픈 곳을 그 때마다 해결해 주는 청백리로 그의 높은 얼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