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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씨름 대축제’ 천하장사(140kg 이하) 결정전(5판 3선승제)에서 이재광(26·영월군청)을 3 대 1로 누르고 황소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씨름부 한 학생이 어떻게 하면 김진 장사처럼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김진 선수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선생님 지도에 성실히 따르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교육 현장의 어려움으로 힘겨워하는 세태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행사 중 이재영 군수가 김 선수 어머니에게, 김 선수가 그의 아내에게 꽃다발을 안겨주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자아내게 했다.이재영 군수는 "6년 만에 천하장사에 등극하며 증평이 명품 씨름의 고장임을 널리 알린 김진 장사가 무척 자랑스럽고 고맙다"라며 "앞으로 김진 선수와 인삼씨름단이 발전할 수 있도록 지원과 관심을 기울이겠다"라고 말했다.한민족 반만년 역사와 함께 숨 쉬어온 씨름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민속경기라 할 수 있다. 민속씨름을 계승하는 일은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과 다름없다. 씨름에 녹아 있는 한민족의 정신과 혼을 이어받는 노력이 절실하다.씨름은 모래판이나 매트 위에서 샅바를 허리춤에 둘러맨 두 선수가 상대편의 샅바를 잡고 손기술, 다리기술이나 허리기술 등으로 상대를 넘어뜨리는 스포츠다. 발바닥을 제외한 상대의 신체 어느 부분이라도 먼저 땅에 닿으면 승부가 나기 때문에 무척이나 단순한 경기이지만 오히려 단 한 순간의 실수나 체중 쏠림, 자세 무너짐이 곧 실점으로 직결되는 단순함 때문에 매우 짧은 순간에도 수많은 심리전과 복잡한 기술들이 오고 가는 스포츠이다.우리나라의 씨름 기술은 내국(內局:배지기), 외국(外局:등지기), 윤기(輪起:딴족거리) 등으로 구분되어 단조로웠다. 그러나 씨름 경기가 민속놀이에서 벗어나 스포츠로 정착, 발전함에 따라 그 기술도 다각적으로 향상되었다.씨름 기술의 근본은 심신의 힘, 즉 체력이며, 그 원리는 내부적 힘과 외부적 힘의 이치를 바탕으로 하는 임기응변적 몸의 중심상태를 뜻한다. 씨름에 있어서 공격과 방어, 받아치기의 기술은 상대의 힘에 거스르지 않고 그 힘을 이용하는 동시에 자기의 힘을 합쳐서 뜻하는 방향으로 상대 몸의 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다.씨름은 강한 신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강인함과 의지력을 요구한다. 참가자들은 대결하는 동안 상대를 이기기 위해 각인된 기술과 무기력을 발휘한다. 이러한 교전은 한국 무예 전통에서 추구하는 바로 ?도?의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또한 씨름은 지역사회와의 연결고리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역에서 열리는 씨름 경기는 주민들에게 활력과 즐거움을 주며, 지역사회의 융합과 문화 교류를 촉진한다. 이로 인해 씨름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더욱 사랑받고 소중한 존재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우리의 민속씨름 경기는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며 국제적인 대회가 개최된다. 한국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의 참가자들도 함께 경기를 즐기고 전 세계에 씨름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씨름이야말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무형 문화 유산으로서, 미래 세대에게 이 전통을 전해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소임이다. 씨름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영원히 보존하며, 우리의 문화적 유산으로서의 자부심을 이어나가야 하겠다.증평역 100주년, 증평군 개청 20주년에 김진 씨름왕의 쾌거는 대한민국의 씨름 메카로 부상하는 증평의 대미를 장식했다.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인테리어디자인학과 객원교수 자세히보기 칼럼 칼럼 2023.12 가을과 겨울 가을과 겨울 중국의 구양수(歐陽修)가 지은 ‘추성부(秋聲賦)’를 읽고 그림으로 표현한 것은 생각이 닿을수록 놀랍고도 아름다운 일이다. 조선 후기의 화가 단원 김홍도가 그림으로 그려 낸 ‘추성부도’가 그것이다.구양수가 책을 읽다 소리가 나자 동자에게 무슨 소리인지 나가서 살피라 했고, 이에 밖으로 나간 동자는 ‘별과 달이 환히 빛날 뿐 사방에 인적은 없고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납니다. 사무인성(四無人聲) 성재수간(聲在樹間)’이라고 답했다는 바로 그 장면을 그려낸 것이다. 동자는 손을 들어 바람 소리 나는 쪽을 가리키고 있으며, 집에서 기르는 학 두 마리는 목을 빼고 입을 벌려 그 바람 소리에 화답하듯 묘사되어 있다. 또 마당의 나무들은 왼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 바닥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드문드문 흩날리고 있다. 그야말로 가을 소리를 눈으로 보듯 역시 구도에 대한 단원의 뛰어난 감각을 단적으로 느낄 수 있으며, 호리호리하면서도 불규칙하게 꺾여 올라가 끝이 갈라지는 나무 형태 또한 단원의 전형적인 화법을 보여준 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이 그림은 1805년 단원의 나이 61세에 제작된 것으로 그 해는 단원이 죽기 바로 전 해로 추정되므로 그것은 어쩌면 구양수가 전하고자 했던 노년의 비애이자 또한 동시에 죽음을 앞 둔 단원 심회의 형상화이기도 할 것이다. 단원 역시 자녀 문제 등 인생의 허무함에 절로 탄식할 수 밖에 없는 중에, 추성부를 만난 것이 동병상련으로 큰 위로를 받을 수도 있었다는 추측이 들기도 한다.국립청주박물관에서 광주, 대구에 이어 세 번째 지역특별전을 연 덕분에 지난 7월에는 ‘인왕제색도’ 원화를 볼 수 있었고 늦가을엔 ‘추성부도’를 만나게 된 것이다. 특별전의 명제는 ‘어느 수집가의 초대’로서 고(故) 이건희 님이 수집 보관해오던 서화, 청자, 백자, 서책, 분청사기, 금속공예품 등을 격조있게 전시한 것이다. 땅에 묻히거나 마구 훼손되어 다시 볼 수 없었던 조상들의 손길과 예능을 다시 만나게 해 준 그 수집의 감동을 다시 깊게 안아보고, 감사함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이 같은 가을 소리를 귀 기울여 듣는 존재는 사람들 외에도 문인석과 동자석들이라고 한다. 하루 저녁 박물관을 찾아가 석조문화재를 직접 선정 배치한 학예사로부터 안내와 설명을 들어보았는데 선조들의 무덤을 지키는 석인상은 돌로 제작되었지만 아름다운 복장과 고운 웃음을 머금고 주변의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것이다. 이건희 님이 기증한 836점의 석조문화재 중 200점을 선별하여 박물관 곳곳에 야외 정원을 꾸며 놓아 가을이 쉽게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인석으로 대표되는 사대부 분묘의 석물은 매장된 주인공이 높은 지위에 있었거나 고매한 인격의 소유자였음을 알려주며, 대개는 다루기 어려운 화강암을 힘들게 쪼아 세우기 때문에 후손들의 갸륵한 효심을 대변해 주기도 한단다. 그림만 그린 것도 아니고, 시도 써서 아들 김양기가 출판한 《단원유묵》이라는 문집을 남긴 단원의 지극한 예술혼! 이제 추성이 그립다한들 일 년을 좋이 기다려야 한다. 박물관 곳곳의 동자석들과 손을 잡고 저 하늘 하얀 천사를 조망해본다. 단원이 구양수의 시를 이해하고 흠뻑 빠졌듯이 수화 김환기는 윤동주의 시를 인정하고 사랑했는가 보다. 1955년 동주 시인의 서거 10주기를 기해 증보 출판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표지화를 수화가 그려주었다 하니 그 또한 아름답고 기막힌 예술의 교류이다. 점(點)·점화로서 추상화의 새 영역을 개척한 수화의 작품 전시가 12월 말까지 환기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가을은 청주국립박물관에서 추성으로 깊어졌고 겨울은 환기미술관에서 수많은 점으로 다시 시작될 것이다.큰 눈이 깊이 쌓이기 전에 그 심오한 점화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 돌아오는 길에 가까이 언덕에 있는 윤동주문학관에도 들러 시인의 겨울나기도 함께 하고 싶다.그림과 시, 시와 그림, 가을과 겨울이 그 속에서 오가고 있다.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자세히보기 칼럼 칼럼 2023.11 깊어가는 가을, 깊어가는 고민 깊어가는 가을, 깊어가는 고민우리나라의 문맹률은 1% 미만으로 제로에 가깝다. 그만큼 교육에 대한 열정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배우고 익히기 쉬운 한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도로 발달 된 산업화 시대에 새로운 문맹이 생겨나고 있다. 바로 디지털 문맹이다. 문맹으로 산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나는 요즘 세상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 나는 기계 앞에서 청맹과니다. 먼 길을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나는 공간지각력이 남들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아. 그래서 청주를 벗어날 때는 주로 남편과 함께하는 데, 이번에는 남편이 중요한 다른 일정이 있다고 한다. 먹고사는 것이 중한 일이니, 사업상이라는 말 때문에 혼자 길을 나서기로 했다. 세 시간이 넘게 걸리는 곳이다. 멀기도 하고 언제 또다시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곳이라, 예전에 신세를 졌던 분들도 보고 오기로 작정했다. 그들에게 과일이라도 사 갈 요량으로 마트에 들른다. 황금 사과를 사서 계산대로 가는데, 계산대가 모두 무인으로 바뀌어 있다. 갑자기 가슴이 콩닥거린다. 어찌해야 하나 어떻게 계산을 무사히 마치고 저 공간을 통과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다들 척척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계산을 잘도 한다. 막막함에 매장을 이리저리 살펴보는데 마지막 칸에 있는 계산원이 눈에 들어온다. 그곳으로 물건을 들고 달려가 계산하고 무사히 마트를 빠져나온다. 4차 산업 시대 빠르게 보급된 키오스크는 페르시아어로 ‘별장 속 작은 개방형 건축물을 의미하는 쿠슈크(Kushk)’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요즘의 키오스크는 전자가판대를 의미한다. 카페, 식당, 영화관, 공항, 박물관 등 키오스크가 없는 곳이 드물다. 사람보다 빠른 정보처리 능력을 통해 인건비를 절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나처럼 디지털 문맹들에는 너무 불편한 시스템이다. 과일을 사서 고속도로를 향하는데 기름이 달랑거린다. 걱정이 밀려든다. 고속도로에 진입하기 전에 기름을 넣고 가야 한다. 그런데 주유소 두 군데를 지났으나 모두 무인 시스템이다. 이제 IC까지 주유소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곳은 셀프가 아니길 바라면 속도를 낸다. 그러나 역시 그곳도 무인 시스템이다. 어쩔 수 없이 기름을 넣지 않고 고속도로에 진입한다. 고속도로 휴게소라면 당연히 사람이 있을 것 같았다. 기름이 거의 바닥을 보이니 이번에는 무인이건 아니건 선택의 여지 없이 기름을 넣어야 한다. 드디어 도착한 고속도로 안 휴게소, 아뿔싸! 이곳도 무인 서비스지역이다. 어쩔 수 없이 차에서 내려 키오스크 앞으로 다가간다. 손 모양에 정전기 방지 터치를 하고 시스템이 안내하는 대로 유종을 선택한다. 그리고 금액을 입력하고 안내에 따라 주유구를 열고 호수를 꼽으려 하는 순간 기름이 바닥으로 주르르 흐른다. 당황한 나는 가게 안으로 들어가 직원을 불러온다. 호수를 먼저 꼽고 레버를 당겨야 하는데, 호수를 기계에서 들면서 동시에 레버를 당겨서 그렇다고 한다. 직원의 도움으로 겨우 기름을 넣었지만, 옷엔 기름이 묻고 손엔 진땀이 난다. 다시 출발하고 그제야 눈에 가을이 들어온다. 나뭇잎들이 울긋불긋 치장을 했다. 마지막 가는 모습이 초라하게 보이기 싫은 걸까. 꽃보다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산들이 휙휙 지나간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일을 마치고 다시 청주로 향한다. 가는 도중 뭐든 다 있다는 상점에 들러 가족들 줄 선물을 골라 계산대로 향한다. 그런데 또 한숨이 나온다. 그곳도 터치스크린과 바코드 리더기를 이용한 셀프 계산을 해야 한다. 가게 이름이 다 있어를 연상하게 하는데, 없는 게 있다. 뭐든 다 있는데 계산원은 어디에도 없는 상점이다. 당황한 나는 뚤레뚤레 매장을 둘러본다. 멀리 한 여직원이 있다. 그녀를 불러 겨우 계산을 마치고 고속도로를 탄다. 전주를 지나고 회덕을 지나는데 배가 고프다. 휴게소에 들러 식사할까 말까 고민한다. 그곳도 키오스크로 주문을 할 것이다. 이내 휴게소를 포기한다. 집에서 싸 온 귤과 커피로 허기를 달래며 돌아온다. 짐을 풀고 소파에 누워 한참을 생각한다. 나는 21세기에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전자책보다 종이책이 더 좋고 AI 스피커보다 사람의 육성을 더 좋아한다. 그러나 어찌하랴. 급속도로 변화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하는 것을. 디지털 문명에 적응해야 한다. 21세기에 걸맞은 스마트한 인간이 되어 키오스크 앞에서도 당당한 사람이 되어야겠다. 가을이 깊어가고 내 고민도 깊어간다. / 시인 김나비 자세히보기 칼럼 칼럼 2023.11 가을 말미에서 보내 온 편지 어름사니는 끝내 이승을 하직했다. 시월도 마지막 날, 바싹 마른 채 죽어 있는 어름사니를 보았다. 머리카락이 빠진 것처럼 엉성한 집에서, 주인도 없는 사체가 간단없이 떨린다. 높새가 거미줄 치는 초겨울, 복색도 현란한 무당거미의 죽음이 아찔하다. 제 집에서 죽었는데도 첫서리에 시드는 나뭇잎처럼 꺾였다. 어찌된 사연일까. 눈 질끈 감은 뒤에도 허공에 결박된 채 외줄을 타곤 하더니, 썰렁한 죽음 뒤로 어름사니의 하루가 엇갈린다.그는 광대다. 특별히 줄을 타는 어름사니다. 혼자서는 움직이질 못하니 바람이 그네를 태운다. 퀭하니 들어간 눈은 허공만 응시하고 철거된 집 하나가 바람을 끌어안는다. 한 줌도 못 되는 주검의, 위험한 노래 한 소절 누가 엮었나? 인생도 어릿광대처럼 한 바탕 연극이었던 것을. 살 동안에도 슬프지 않은 척 불행의 늪에서도 웃어야 하리. 물갈퀴는 아랑곳없이 언제나 우아했던 물오리처럼.바우덕이 축제에서 본 어름사니도 거미처럼 줄을 타고 있었다. 합죽선 모아 쥐고 곡예를 펼친다. 무거운 발걸음을 깃털처럼 가볍게 내디딜 때는, 거미가 어름사니 흉내를 내는지 어름사니가 거미를 따라 하는지 모르겠다. 어름사니 또한 죽을 때도, 거미처럼 추락하지는 않겠지. 붉은 꽃 던지고 푸른 꽃 던져도 차디찬 봉오리만 새기던 얼음꽃밭처럼.어름사니는 얼음 위를 가듯이 조심스럽게라는 뜻이다. 다르게는‘얼음판에 조롱박 밀듯이’라고도 했다. 얼음이 깨질까 봐 차분한 발걸음을 조롱박이 미끄러지듯 살짝살짝 차버린다. 허공에 집 짓는 거미는 새털구름의 무게까지도 가늠한다. 바람이 툭툭 꽃잎을 차버리듯이 무게 중심은 필요했다. 오늘 본 거미도, 죽었지만 떨어지지 않고 멀쩡했으니까.어떤 사람들은 낚시꾼이라고 불렀다. 꽁무니에서 은빛 실 꺼내서는 그물을 던졌다. 파리가 들러붙고 잠자리가 걸린다. 불시착하는 곤충은 그대로 죽어 나갔다. 낚시라면 물가에서 고기를 잡는다. 거미가 친 그물은 서발 막대 휘둘러도 걸릴 게 없는 허공이지만, 구름이 섬으로 떠오를 때 보면 물새가 울어 예는 강기슭 풍경이 자연스럽다.바람의 입질이 시작되면 구름이 텀벙 내려왔다. 낚시 또한 밑밥을 깔고 미끼를 달아 고기를 잡지 않던가. 허탕을 칠지언정 세월을 낚고 소망을 낚을 동안 아득히 푸른 허공도 베어 먹을 수 있다. 낮에는 푸른 실 드리우고 밤에는 비단실 감아 별 반짝이는 허공에 수를 놓는다.바람이 늘어뜨린 동아줄 밟고 가면 너를 만나게 되리. 해거름이면 서쪽 하늘 달려가 붉은 눈물도 한 방구리 담아낼 것 같다. 강물보다 깊은 침묵을 깨고 한 발 두 발 죽음의 길로 발을 내딛던 그의 정체는 뭐였을까. 거미와 한통속일 수밖에 없는 배경을 꺼내면서 그 운명이 참으로 안쓰러웠건만…….동아줄은 5m 안팎이다. 얼핏 봐도 대여섯 걸음밖에 되지 않는데 위험한 노래 즈려밟고 갈 테니 천리보다 아득했으리. 두 개의 기둥에 걸린 외줄은 깊은 산 계곡에서 출렁다리를 가듯, 천 길 낭떠러지에 걸친 외나무다리 같기도 했겠다. 잔뜩 실리는 것은 우물보다 깊은 침묵이었을 뿐, 발치의 무게는 깃털처럼 민들레 씨앗처럼 흩날렸으리.갑자기 챙챙 책책 꽹과리 소리가 낭자하다. 허공을 가로지르는 발판인데 무심결인들 보게 되면 휘청대고 말 테니 더 이상 어름사니가 아니었다. 허공에 집을 짓는 거미도 그럴 경우 바닥에 떨어진다. 어름사니가 어름사니일 수 있는 것은 그물도 집도 아닌 공중누각의 줄 때문이다.누군가는 전생에 목수였을 거라고도 했다. 미레자로 먹물을 퉁기면 하루에도 허공의 집이 수 십 채는 올라갔다. 나무를 다듬고 깎아내는 대패질보다는, 먹물을 떨어뜨려서 점을 찍고 컴퍼스를 넓혀나가는 게 더 적성이었을 거야. 고추잠자리 앉아 있던 붉은 지붕과, 건들마 쉬어가던 추녀 끝에도 올라갔다. 심심파적으로 짓는 것 같아도 옷이든 머리든 걸리기만 하면 여간 낭패가 아니다. 비눗물에 담가 두어도 끈적이기만 할 뿐, 한번 들러붙은 벌레는 그것으로 끝이다. 자신도 마침내는 끈적이는 그물망에 갇혀버렸지 않은가. 그 때는 전혀 몰랐을 테지만.거미줄만 보면 질색하는 장수가 있었다. 하루는 전쟁터에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다급한 마음에 산기슭에 있는 동굴로 들어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거미가 동굴 입구에 막 줄을 치는 중이었다. 이어서 적군이 추격해 왔으나 거미줄을 보고는 그냥 통과했다.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그는 평생 고마워하며 살았다는데.여기까지만 들어도 대단한 건축가임에는 틀림없다. 자신은 목수라 해도 집 지을 때는 벽돌공과 기와장이 미장이도 있어야 했다. 연장만 봐도 톱이니 끌과 대패 등 다양했으나, 쫓기고 추격하는 짧은 동안에도 집을 짓는다. 당연히 적군은, 동굴에 숨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어떻게 지을지 구상할 필요도 없고“금 나와라 뚝딱”처럼‘집 나와라 뚝딱’하는 식이다.어지럽다. 바람이 불면 허공의 집이 물결처럼 흔들린다. 산꿩만 울어도 끊어질 것 같은데, 아무렇지도 않고 태연자약했다. 보는 사람들은 손에 땀을 쥐는데 구름을 불러들이고 허공을 누비던 어름사니처럼, 먹이 뒤에 숨어서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먹이는 잔뜩 걸리게 하면서도 풍류는 풍류대로 즐겼다. 하루살이의 하루를 두부처럼 잘라먹거나 잃어버린 기억을 반추하면서.그나마도 바싹 마른 사체가 무덤도 아닌 무덤에 안치되었으니 부질없다. 그물이라 해도 벼리가 없었다면 온전한 풍류객이 되었으련만 욕심이 눈을 가릴 동안 물빛처럼 화려한 궁전은 덫으로 바뀌었다. 침입자라면 빠져나갔을 텐데 물결도 같고 활주로도 같은 은빛궁전에 그대로 안주했으리.어름사니든 무당거미든 열두 가지 재주꾼이 저녁거리가 없다는데, 곡예를 끝내고 내려오는 어름사니의 하루가 천 근 만 근 무겁다. 더는 올라갈 수 없는 지상의 꼭짓점에서 재주를 펼치고 끼니와 잠자리를 해결하는 어름사니든, 수 십 채 집을 짓고도 종당에는 거꾸로 매달려 죽는 거미든 고단한 삶은 다를 게 없다. 악몽을 꿀 때마다 가위가 눌린 채 눈을 뜰 수 없던 기억처럼 현실로 돌아오기가 두려웠던 게지.바람의 음표를 따라가면 그리운 누군가의 사연쯤은 받아 적을 법한데 왜 자꾸 미끼가 걸려드는지 몰라. 바람의 입질로 모여든 소금쟁이가 있고 북쪽 하늘의 철새들 노래가 들리면 가을도 무릎께 차올랐다. 켜켜로 쌓인 가랑잎은 된바람 토악질에 아우성인데, 목을 맨 것도 효수된 것도 아니고 다만 풍장이 된 시체 한 구가 외롭다.동심원을 닮은 과녁판에 침묵이 쌓인다. 죽음에 결박된 어름사니의 고백이 가슴을 친다. 벌레 잡는 거미든, 구경꾼들 앞에서 밧줄 타고 허공을 누비던 어름사니든 그 순간은 혼자였노라고. 사니가 최고의 경지를 뜻한다면 천하의 재주꾼인데도 줄에 걸려 죽은 거미 한 마리. 어찌할거나. 속상하지만 우리 또한 살얼음판을 가듯 긴장하는 어름사니 인생이었던 것을.바람에 거미가 또 한 번 출렁인다. 썰렁한 풍경은 거미를 더 이상 어름사니로 보아주지 않았다. 수많은 집을 짓고 뽐내던 그 날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얼마나 예쁜 집이었던가. 보슬비 뿌리는 날 구슬은 천연 예술품이었건만, 거미의 죽음을 탐색하면 추억의 미이라가 된 아픔이 서렸다. 제가 파놓은 함정에 빠진다더니 제가 쳐 놓은 그물에서 변을 당할 줄이야. 그래도 줄을 타고 있을 때는 행복했으리. 추락의 위험을 안고 살지만 그런 중에도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비법을 터득한다. 발밑으로는 천야만야 낭떠러지여도, 철새들 목청에 귀 기울일 때는 무한정 푸르렀던 어름사니의 하루. 발걸음이 영혼처럼 가벼운 것도 줄타기에 오로지하는 그 때문일까. 거미는 죽었으나 또 다른 어름사니의 꿈이 허공도 아닌 허공에서 피어날 테니.느낌이 수수롭다. 줄타기가 끝나면 우리는 또 얼음같이 차가운 물을 동이에 차름차름 담아낼 수 있겠다. 거미도 어떻게 달빛처럼 새하얀 줄인지 알 수 없으나, 깊은 밤 초록별과 지새는달에서 가난한 행복을 접목해 보았으리. 어름사니의 밧줄 또한 추락과 긴장을 꼬아 만든 줄이었지만, 허공의 집을 대입하면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던 것처럼. / 이정희 수필가 자세히보기 칼럼 칼럼 2023.10 아버지의 산 아버지의 산아무리 좋은 산이라도 정상에서 내려오면 서서히 잊어버리는데 두타산은 나의 뇌리와 가슴에 지금껏 자리하고 있다. 산을 찾을 때는 과연 정상의 형세는 어떠할지 사람들은 무작정 옆도 안보고 오르고 또 오른다. 대부분의 정상은 조금은 오만하고 위험한 형세로 위용을 과시하는데 두타산은 달랐다. 꽤 넓은 바위가 제단처럼 자리 잡고 그것도 계단식으로 3단까지 있어 편안하다. 작은 정이품송처럼 아담한 소나무도 한그루 서 있어 정상의 단아함을 잃지 않고 있다.낮지도 그리 높지도 않은 598 미터라는 네모난 표지석이 우리 내외의 입장을 허락하는 듯 의연하다. 등산 초반부터 사람들이 거의 안보여 정상에도 아무도 없으려니 했는데 타도에서 온 몇 사람이 도시락을 펴놓고 정상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 그 옆에서 우리 내외도 김밥과 갓김치로 맛있게 점심을 나누었다. 두타! 부처가 누워있는 모습의 섬 같은 산이라고 불린다. 실은 증평 쪽으로 나들이 갈 때마다 멀리 지켜보면서도 빨리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내키지는 않는 산이었다. 그러나 오랜만에 등산을 결심하고 두타산에 깃든 ‘영수사’로 가는 입구부터 반해버렸다. 작은 계곡을 따라 진입로는 좁아 차들이 빨리 달릴 수 없어 좋고 일주문이 거인처럼 시원스레 서서 환영한다. 위로 오르면서 이곳저곳 살펴볼수록 나무 한 그루, 바위 등이 평범을 넘어 기대 그 이상의 운치를 지녔고, 어느덧 정상 부근의 소나무 군락을 만났을 때 감동은 연인을 처음 만났을 때 설렘을 일으킨다. 굵은 소나무가 이리 휘고 저리 굽히고 마치 일부러 키워낸 분재처럼 기기묘묘한 형세를 지니고 있어 쉽게 눈길을 거둘 수 없다. 점심 나눈 뒷 처리를 말끔히 하고 기념 촬영 후 정상을 또 한 번 눈에 넣는다. 내려오면서 삼국시대에 쌓았다는 석성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다녀간 사람들이 피라미드 형세로 쌓아 올린 작은 탑들이 초록 이끼를 얹고 돌의 초원을 이루고 있다.정상을 먼저 보고 하산 길에 들르기로 한 옹달샘과 전망대가 계속 설렘을 부추기고 있다. 먼저 우측으로 옹달샘 표지를 따라 내려가는데 남편이 노래를 흥얼거린다“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어서 옹달샘이 나타나기를 고대하며 나도 따라 부른다. 한참을 내려가도 샘이 보이지 않는데 앞서 찾아보던 남편이 ‘여기다’하며 소리친다. 한숨에 달려가 보니 큰 바위틈 아래로 물이 졸졸 흘러나와 작은 바위 사이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이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파란 바가지가 있어 한 모금 떠서 마시는 순간 두타산을 찾아온 보람과 상서로움을 만끽하게 된다.다시 비탈을 올라와 전망대를 향하여 걷는다. 전망대는 정상에서 내려오면서 좌측에 있었다. 이정목을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니 목재 계단과 가는 목재로 안전하게 울타리를 친 전망대가 보인다. 또 한 번 벅찬 가슴으로 전망대에 서니, 정상에서 보이지 않던 만뢰산, 백곡 저수지가 아득히 보이고 진천읍, 이월면 등 인간이 나누어놓은 세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번 가을을 맞으면서 두타산 등산을 정한 것은 다름 아닌 아버지 때문이다. 두타산은 아버지의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관되어 있다. 진천에서 국민학교를 다니셨고 지금은 증평에서 가까운 청주시 북이면 선산에 누워 계시기 때문에 두타산을 바라보면 늘 아버지를 생각하는 것이다. 올해로 아버지 떠나신지 어느 사이 16주기를 맞아 두타산을 찾은 것은 우연의 일치면서도 기념비적인 일이다. 두타산은 아버지의 산에서 오늘 비로소 나의 산으로 탄생한 것이다. 멀리 아버지 어린 시절의 저녁연기가 피어오르고 금빛 물결이 출렁이던 그 옛날이 전망대까지 이어 올라오는 듯 아버지와 다정했던 순간들이 가슴에 또 피어난다. 여고 입학을 위해 시험을 보러갈 제 버스 멀미에 지친 나를 아버지가 등 두드리고 치워주신 일, 아버지가 학교 관사 외에 처음 마련한 집 이층화단에 아치를 만들고 나팔꽃을 심고 장미 덩굴을 함께 올리던 일, 제천으로 아버지와 나의 외동딸 삼대가 기차를 타고 여행 가던 일 등 어쩌면 의기소침한 외아들인 오라버니 대신 나를 작은 아들 삼아 많이 의지하신 것 같다. 남편이 내 손을 잡고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채근한다. 아버지를 기억하며 매년 한 번씩 두타산에 오르자고 제안을 한다. 그 옛날 남편을 만나 첫선을 보고 부모님께 소개 인사를 드렸을 때 제일 먼저 아버지가 합격점을 내리신 것이다. 그 후 제부가 된 여러 명의 사위를 보셨지만 아버지는 남편을 가장믿고 하나뿐인 오라버니를 부탁하며 총애하셨던 것이다. 내려가며 다시 보아도 나무들과 바위의 형상이 예사롭지 않고 비탈도 알맞다. 일 킬로 정도 내려오니 ‘영수사’라는 이정목이 드디어 나타난다. 가을 햇볕이 부드러운 화살로 나뭇잎을 물들이고 연인처럼 다녀가는 바람이 나뭇잎을 건드려 말없이 이어지는 자연의 순환이 무엇보다도 신비롭다. 경사가 완만해지더니 저 아래 영수사 지붕이 푸릇푸릇 보인다. 영수사는 석탄일에는 보물 1551호인 괘불탱화가 내걸려 불심을 북돋우는 곳이다. 아침 등반 시작에 산의 깊은 고요를 열며 들려오던 목탁소리는 잠잠하고 대웅전 뒤 고욤나무 아래 스님이 그림처럼 서 있다. 나는 철이 없었다. 아버지가 언제 두타산을 올라가 보신 적이 있는지 생전에 한 번도 질문하지 않은 것이 이제 사 깊은 회한으로 남는 것이다. 오직 바라는 것은 아버지도 젊은 날에 이 두타산 어느 산길에 발걸음을 남기셨는지 아니 흔적이라도 남아있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넓고 두툼한 목판에 ‘두타산 영수사’라는 이름을 단 일주문이 우뚝 서 아버지 대신 손을 흔든다.‘와 줘서 고맙노라고 돌 하나 나무하나 새 한 마리 지나는 바람 한줄기 마저도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노라고’ 이제 사 아버지의 산을 찾은 나도 늙어가고 있는 것일까? 산은 늙어가면서도 젊음을 잃지 않는다. 늘 새 생명을 위해 비바람 견뎌내고 새들의 둥지를 위해 팔을 내놓는다. 계절 따라 옷을 갈아입으니 산에 들 때마다 무심한 사람들에게 끌림을 선물한다. 늘 그런 산에 오를 수만 있다면 더 없는 축복이다. 내가 아버지의 딸인 것처럼, 지구의 시간이 겁을 흘러가도 두타산은 우뚝하게 아니 더욱 정답게 서 있기를!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자세히보기 칼럼 칼럼 2023.10 20?30 증평인삼골축제 20?30 증평인삼골축제문화는 삶의 질을 높이는 현대인의 원동력이다. 축제의 계절에 증평문화축제를 떠올려 본다. 증평군은 충북 인삼을 석권(席卷)하여 생산할 만큼, 충북 인삼 집산지로서의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이처럼 오래전부터 오늘에까지 증평에 이어져 온 인삼경작과 유통은, 지금에 이르러 증평군 경제에 없어서는 안 될 특산품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증평군민들은 증평이 인삼의 고장이라는 자부심이 강하다. 청명한 가을 날씨가 더없이 아름답다. 이렇듯 아름다운 계절에 지난 10. 12 ~ 15일에 걸쳐 보강천 체육공원 일원에서 펼쳐진 ‘증평인삼골’ 축제장에는 수많은 인파가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다. 축제는 지역 일자리 창출 효과와 지역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에 영향력을 끼친다. 또한 여가 활용과 문화 향유에 의한 공동체 의식의 형성, 지역의 브랜드 이미지를 홍보하는데 크게 한몫 한다.이에 걸맞게 이번 축제의 캐치프레이즈는 ‘스무 살 젊음, 즐겨라 증평’이었다. 이 때문에 기존 축제와 차별화를 꾀한 점이 두드러진다. 증평군 개청 20주년과 서른 번째를 맞은 축제를 기념해 ‘젊음’을 부각했다. 젊음을 상징하는 청바지에 흰 티를 입은 관람객들은 축제장 곳곳에서 다수 볼 수 있었다. 청바지와 흰 티를 입은 방문객에게는 인삼 튀김과 맥주 등을 구매할 때 할인해 주는 이벤트도 재치가 있다. 권장 옷차림에 부합한 이들에겐 주 무대에서 수시로 기념품을 제공하며, 젊음의 증평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고향 사랑이 묻어난다.‘증평인삼골축제’는 지역에 깊이 뿌리를 내린 증평의 특산품 인삼을 신조로 증평 양돈산업을 특화한 홍삼 포크를 널리 알리고 더불어 증평군 주민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의 우수성을 홍보하는 축제의 장이기도 하다. 축제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문화행사이다. 주 무대를 중심으로 행사장 일원에서 크고 작은 공연과 체험행사가 펼쳐져 축제장을 찾아온 관광객들은 지루할 틈이 없다.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로 축제의 분위기는 한층 고조되었다.‘증평인삼골축제’ 핵심 콘텐츠인 인삼과 맥주를 곁들인 인맥 EDM 파티를 비롯하여 증평 K-POP 국제 청소년 페스티벌, 전국인삼 골 가요제, 거리공연 페스티벌 등 다양한 문화예술공연과 경연 행사가 어깨를 들썩이게 한다. 이 축제는 2023∼2024 한국 방문의 해 문화체육관광부 'K-컬처 관광이벤트 100선'에 선정되기도 하여 의미를 더했다. 미루나무숲 체육공원에 자리한 증평관광홍보존, 증평인삼존, 어린이가족체험존, 초가민속체험존 등 아기자기한 다양한 주제의 체험행사가 준비되어있어 누구나 축제를 즐길 수 있었다.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형형색색으로 밤하늘을 수놓은 불꽃놀이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축제 방문객과 주민이 함께 어우러져 삼겹살을 대형 구이틀에 구워 먹는 '홍삼포크삼겹살 대잔치'는 장사진을 이루어 ‘증평인삼골축제’의 면모를 과시하는 듯 하다. 공중서커스 공연장은 쉴 새 없이 긴 줄이 늘어서며 인기를 실감케 했다. 더욱이 외국인 영향력자 대상 사전 답사와 증평 인삼 갓 탤런트라는 외국인 예능프로그램 등이 독특했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이 축제에 참여해 주민과 함께 어우러진 모습은 세계적인 축제임을 방불케 했다. 연계행사로 홍삼 포크 삼겹살 대잔치, 인삼골 장사씨름대회 등의 행사가 다채롭게 진행되었다. 코로나19로 중단되었다가 실로 5년 만에 다시 열려 축제의 분위기가 한껏 흥을 돋워 감회가 새롭다.지난해 이태원 참사를 거울삼아 증평군은 축제 안전 종합계획을 수립하고 사전점검을 실시하였다. 축제 당일에도 확인 점검 등 여러 차례에 걸친 점검으로 안전사고 없는 축제를 도모하였다. 이를 위해 이면에서는 괴산경찰서, 증평소방서, 한국전기·가스안전공사 등 관계기관과 증평군 안전 관리자문단 소속 전문가가 참여해 합동점검을 실시하였다. 점검 요원들은 축제장 내 구급 차량 위치·이동 동선 확보사항, 구조·구급요원 배치, 전기·가스·소방 설비, 방문객 편의시설 현황, 주야간 경관시설물 등을 확인하고 축제 관계자와 긴밀하게 대처하여 무사고로 성공리에 축제를 마무리했다. 또한 취약 부분인 공중화장실을 청결하게 관리하여 문화시민의 긍지를 높였다.이처럼 내실 있는 행사를 위해 증평군은 관람객 안전에 온 행정력을 기울였다. 이재영 군수는 ‘축제장을 찾는 관람객들의 안전과 아름다운 화장실 문화를 강조하며, 문화의 위상을 높이고 안전관리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특별히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축제 기간 중 대규모 인파 운집에 대비한 안전관리 및 안전관리 요원 적정 배치로 돌발상황 발생 시 즉시 대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높이 평가할 일이다.축제를 통한 외교사절도 함께 하여 축제의 위상을 높였다. 중국 칠대하시와 관남현 방문단이 경제, 문화, 교육 등 국제교류 추진을 위해 칠대하시 부시장 왕팅과 관남현 부현장 이수운을 비롯한 사절단이 축제 기간에 증평군을 찾았다. 관남현은 2021년 증평군이 처음으로 자매결연을 한 국제도시로 우호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인삼골축제 개막식에 참여한 왕팅 부시장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도 양 도시 문화교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증평인삼골축제는 1992년 증평 문화제로 시작해 증평의 문화와 역사, 특산물인 인삼과 홍삼 포크 등을 주제로 증평의 대표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이처럼 증평군의 대표축제로 우뚝 선 인삼골축제는 지역민은 물론 세계인이 즐기는 문화축제로 성장하기 위해 도약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증평군 개청 20주년이 되는 해, 증평인삼골축제 30주년을 기념하는 20?30 축제는 우리의 가슴에 오래도록 머무를 것이다. 지금까지의 선험적 가치의 바탕 위에 증평의 정체성과 비전을 담고, 문화적 영감과 첨단과학의 연출효과를 기반으로 문화축제를 지속해서 개발한다면 한층 승화된 글로벌 ‘증평인삼골축제’가 되리라는 희망을 꿈꾸어 본다. ?/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인테리어디자인학과 객원교수 자세히보기 칼럼 칼럼 2023.09 나를 찾아서 이기적으로 살기로 했다. 한 달간은 오직 나만을 생각하며 나만 보살피며 지내기로 했다. 그동안 가족들 뒷바라지에, 직장 일에 얼마나 많은 날을 쉬지 않고 달려왔던가. 나를 위한 시간은 늘 뒤로 뒤로 미뤄놓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바다가 보이는 작은 집에서 나 혼자 먹고 나 혼자 자고 나 혼자 나를 만나고 나 혼자 산책하고 나 혼자 책을 보기로 했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며 나를 뒤적여 볼 생각이다. 혼자라는 것은 얼마나 호젓할까. 나를 아는 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나를 찾아가는 일, 생각만 해도 두근거렸다.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그곳엔 바람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내비게이션상으로는 네 시간 이십 분이 찍혔다. 하지만 워낙 공간지각력이 떨어지고 길치인 나는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예상 시간보다 무려 사십 분 늦게 당도했다. 차에서 내린 나를 처음 맞아준 것은 바닷바람이었다. 두 팔 벌려 반기는 바람의 환대에 한참을 멍하게 서있었다. 바다 냄새 품은 바람의 품에 안겨 죽림리 해변에 멈춰 잠시 시간을 잊었다. 미역처럼 길게 펼쳐진 해안도로에 파도 소리가 몰려왔다. 멀리 수평선이 밑줄처럼 그어진 곳엔 갈매기들이 춤추고 있었다. 방을 배정받고 짐을 풀었다. 폐교 옆에 딸린 부속 건물이었다. 폐교는 시화박물관으로 탈바꿈되었고, 관사로 사용하던 곳은 작가들이 머물 공간으로 정비되어 있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아담한 숙소였다. 무수히 많은 선생님들이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려 고심했으리라. 여자 숙소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니 주방 하나 작은 화장실 하나 그리고 방 두 개가 입구를 마주 보고 있었다. 옆 방은 평론가가 기거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방 열쇠가 없는 방이었다. 얼마 전까지 있었으나 어느 순간 사라졌다고 했다. 내가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인 걸 어찌 알았을까. 나는 열쇠 같은 건 없어도 상관없다고 했다. 수중에 책과 노트북밖에 없으니 누가 와서 가져가기는커녕 보태주고 가고 싶을 거라고 웃어주었다. 안에서는 잠글 수 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잠잘 때만 잠글 수 있다면 괜찮을 성싶었다. 짐을 풀고 바닷가로 나가 산책을 하기로 했다. 신참인 내게 공주에서 오신 평론가님이 함께 걸으며 이것저것 알려주기로 했다. 케리어에 있는 짐을 대충 꺼내놓고 바다로 갔다. 갯벌이 허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미역과 청각이 떠밀려와 있고 꼬시래기가 여기저기 돌에 붙어 있었다. 마냥 신기했다. 내륙에 둘러 쌓인 청주에서는 물이라고는 무심천이나 명암저수지만 보다가 먹거리가 넘실거리는 살아있는 바다를 보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미역을 줍고 청각을 줍고 꼬시래기를 주웠다. 열심히 줍는 내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첫날이라 그렇지 좀 지나 보면 줍는 것도 시들해질 것이라고. 그녀는 여고 교사를 하다 퇴직 후 몇 달째 이곳에 머무르면서 청탁받은 서평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녀의 말을 들으며 열심히 바다가 토해낸 해초를 주웠다. 꼬시래기를 데쳐서 새콤달콤하게 무쳤다. 바다의 향기가 입안 가득 퍼졌다. 혼자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고 방에 들어가 노트북을 켰다. 한 달간 머무르며 내가 해야 할 일을 적었다. 그리고 간간이 가 보아야 곳을 떠올렸다. 머리털 나고 처음 온 곳이고 언제 또다시 올지 장담할 수 없는 곳이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가는 곳마다 다 눈에 담아야 한다. 팽목항, 울돌목, 소치기념관, 신비의 바닷길 등을 목록에 넣었다. 그리고 읽어야 할 책과 써야 할 글들의 목록을 작성했다. 계획한다고 다 실천하는 것은 아니지만 계획이 있어야 길을 잃지 않을 것을 알기에. 이 계획 중 반 만 실천을 하고 돌아가도 진도는 내 기억의 필름에 아름다운 고장으로 기록될 것이다. 나를 만져본다. 그리고 눈동자를 안으로 돌려 내 내면을 들여다 본다. 창백한 푸른 점* 지구에서 개미처럼 홀로 떠돌고 있는 나는 누구일까.*칼 세이건의 책 제목 /김나비 시인 자세히보기 칼럼 칼럼 2023.09 도라지는 통꽃 도라지는 통꽃 도라지꽃 수채화가 예쁘다. 이제 막 그려낸 듯이.재 너머 사래 긴 밭에 도라지가 피었다. 살구나무골 지나 푸실 언덕에 올라서면 다랑논이 보이고 벼가 익기 시작하는데 노을 지는 해거름에 보니 청남색 초롱을 내걸었다. 통꽃이라는 예명대로 활짝 벙근 꽃송이가 어쩜 그리 산뜻하고 보랏빛인지 몰라, 한 번도 깨지 않은 통잠 덕분에 기분도 상쾌하고 더위도 잠깐 잊었던 것처럼.평소 쪽잠과 괭이잠에 익숙했는데 모처럼 단잠을 잤다. 통꽃을 보는 기분도 남다르다. 잠에 대한 핸디캡 때문인지 허구한 날 잠이 고프고 꽃도 하나로 피는 통짜가 끌린다. 밤새도록 깨지 않는 통잠이 그렇고, 꽃이든 꽃받침이든 하나로 연결된 통꽃도 이음매 없이 핀다. 복잡할 게 없다.가을이면 보라색 꽃이 지고 토실하게 밑이 든다. 물 삔 도라지는 창칼만 들이대도 훌훌 벗겨진다. 살짝 씻어 말리면 인삼처럼 뽀얗다. 통통한 것은 돌잡이 애기들 팔뚝처럼 굵다. 한 광주리 쏟아서 껍질 벗겨 말렸다가 나물로 볶아먹는다. 잔뿌리가 실하면 말려도 부스러질 텐데 통 놈이라 옹골차다. 필 때부터 통꽃이더니 떨어지고 밑이 든 뿌리도 오달지다. 바다처럼 넓은 사래 긴 밭에서 통짜로 핀 도라지가 물결처럼 출렁이던 날 추억이다. 바느질에도 통솔처럼 단순한 게 있고 가름솔은 좀 더 까다롭다. 통솔은 두 장의 천을 맞대고 박은 다음 뒤집어서 다시 꿰맨다. 같은 방식으로 꿰매서 솔기를 갈라 처리한 가름솔은 정장과 두꺼운 코트에 적당하다. 옷을 곱게 짓거나 어깨선을 살릴 때 좋지만 얇은 원피스와 블라우스는 통짜 바느질 통솔이다. 옷감이 얇으면 올이 잘 풀린다. 바느질까지 복잡하면 투박해 보인다고 통솔로 드르륵 박았다. 거친 바느질도 필요한지 어슬핏 떠오르던 통장작. 지난 추석에 엿을 고면서 통장작을 지폈다. 가마솥에 넣고 달이는데 넘지도 않고 잘 끓는다. 세밀하지 않아도 어떤 작업에서는 능률적이다. 일일이 쪼개도 불붙이기가 힘든 걸 보면 통짜를 넣어도 거침없이 타던 서까래 장작은 특별하다.마늘에도 통마늘이 있다. 마늘종을 뽑으려고 보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아들마늘 씨앗들. 쏙독새 우는 날 하루 훑어 뿌리면 구슬처럼 동글동글 큰다. 3년 4년 지나면 통마늘이 된다. 쪽을 낼 필요가 없어 다듬기가 편하다. 국화를 봐도 수없이 작은 통꽃이 모여 핀 갈래꽃이었던 것처럼. 질 때도 아로새긴 밑동에서 가닥가닥 흩어졌다.통을 쪼개면 수많은 쪽이 되고 다담다담 쪽을 모으면 통짜로 확대된다. 통이 없으면 쪽은 생길 수 없고 쪽이 아니면 간편한 통 개념도 무의미했다. 작은 통꽃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통꽃처럼 우주라는 통짜 개념도 수많은 쪽으로 이루어졌다. 통이든 쪽이든 한통속이라면 어떨까. 다시금 여울진다. 풀벌레 소리.민들레가 피었다. 늦가을에도 수많은 꽃잎이 단아했다. 이음매 없이 피는 통꽃과 세세하게 피는 갈래꽃 특징이 어우러져서 통 갈래꽃이다. 바느질에도 통솔과 가름솔을 접목한 곱솔이 있다. 한여름 노방과 항라 등의 얇은 옷에 쓰는 바느질이다. 안팎을 곱솔로 박아 솔기를 오려내는 핸드 메이어 방식이라서 훨씬 고급스럽다. 두 겹으로 박아서 처리한 까닭에 움직이는 대로 물결무늬가 생긴다.눈앞의 풍경도 이음매 없는 화폭에 통짜로 새겨졌다. 해거름 지는 하늘은 꼭두서니 물결이었지. 이음매가 없어도 하늘 구름 모두는 곱솔 등의 특별 바느질법으로 처리한 듯 물 샐 틈이 없고 그래 가으내 푸른 물바다를 완상하게 되었던 거다. 시접을 꺾은 뒤 통솔로 드르륵 박아냈겠지. 이음매 없이 필 때는 통꽃이라 불러왔듯이.먹구름 치워버린 하늘도 새 깃을 흩어 놓았다. 속이 비칠 듯 가든한 새털구름은 얇은 옷감을 박는 통솔 느낌이었다. 바람에 올이라도 풀릴까 싶어서 그랬겠지. 통솔은 얇은 옷감을 박는 공법이었으나 풀 먹인 듯 팽팽한 하늘 보면 원단이 너무 쫀쫀해도 부드럽게 다듬는 공법이었을 거야. 원단과 디자인에 맞춰 바느질이 바뀌듯 행복과 불행을 엮어서 짜는 인생도 변수를 찾는다. 통솔에 가름솔도 길이 들면 복잡한 곱솔도 친근해지듯 그렇게.가을이 나를 부른다. 갈 볕에 묻어나는 풀꽃 내음과 멧새들 노래까지 예쁘다. 바람이 불면 황금벼 이삭과 단풍이 추억의 통발에 조목조목 걸려올 듯했다. 댓조각을 엮어 통같이 만들고 작은 발을 달아 두면 끝이 가운데로 몰리기 때문에 한 번 들어간 물고기는 나올 수 없다. 한 번 새긴 추억은 언제까지고 남는 것처럼 추억의 통발에 들어온 풍경도 뇌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것일까.서설이 흩날리는 풍경도 통솔로 마무리했다. 올 풀린 잿빛 하늘도 칙칙하니 어설픈데 헛간 옆 통가리에는 곡식을 담아두었다. 싸리와 수수깡 쑥대로 엮은 발인데 우리가 눈독을 들이는 것은 고구마 통가리다. 어느 해는 감자도 들어가는데 꺼내려고 들쑤셔대다가 와르르 쏟기도 했다. 바느질만 봐도 나름 공법이 있고 수많은 꽃 역시 이파리가 풀리지 않게 피는 자기 깜냥 방식이 있다고 하듯 그렇게.방바닥에 흙이 낭자해도 오재미를 던지며 깔깔대던 겨울밤이 그립다. 통으로 된 것은 그렇게 엉성했다. 도라지가 처음부터 통꽃으로 성글게 보이더니 통가리만 봐도 그래서 썩지 않고 무사했다. 방에서 헛간에서 진 치고 있다가도 봄과 함께 멀쩡 치우게 된 것도 쫀쫀하지 않고 엉성한 까닭이었다. 해가 진다. 오슬오슬 땅거미 속에 번지는 어둠.바야흐로 하루가 끝나는 시점이다. 하루의 휴식이 시작될 테고 뒤미처 시작되는 통잠에의 집착. 깊이 잠드는 게 소원이지만 잠 못 이루는 밤 보는 풍경도 잊지 못할 거였다. 봄에는 하르르 날리던 벚꽃의 기척이, 가을에는 또 귀뚜라미가 엮는 한밤의 콘서트가 굉장했었지. 통잠일 때는 생각할 수도 없는 풍경을 완상하게 된 것이다. 밤새도록 통잠이면 참 좋을 것 같지만 신비한 풍경을 위해서는 가닥가닥 그루잠도 필요하다. 우리들 꿈도 쪽으로 나뉜다. 통짜에서 갈래갈래 흩어지기까지 해도 복잡한 바느질로 꿰맬 수 있으면 획기적 반전이다. 곱솔이, 복잡한 중에도 섬세한 바느질 공법으로는 최고였던 것처럼.세상에는 통꽃이 있고 갈래꽃도 있다는 것, 그리고 어떤 꽃은 통꽃과 갈래꽃 느낌도 아우르면서 통 갈래꽃 이미지를 드러낸다. 인생 역시 까다로우면서도 환상적이기까지 했던 깨끼바느질 곱솔 이미지를 겸할 수 있다. 힘들어도 사연사연 곡절의 아우름이다. 수없이 작은 통꽃으로 된 통짜 갈래꽃 민들레가 촘촘 박힌 꽃잎 때문에 한결 예쁜 것처럼. / 이정희 수필가 자세히보기 칼럼 칼럼 2023.08 관세음 해조음 ?관세음 해조음동해 바닷가 낙산사에는 여러 번 간 적 있는데 누군가 해수관음상을 보았느냐고 물어온다. 직장에 다닐 때나 가족하고도 간 적 있는데 원통보전이나 의상대에서 동해 바다를 바라보고 온 것이지 그 아름답고 신묘하다는 해수관음상은 가까이서 참배한 적은 없었다. 이번 여름에 손녀딸 방학을 맞아 양양 낙산사로 향한 것은 푸른 바다와 함께 그 해수관음상을 직접 보기 위함이었다. 그 보살님은 높이 16미터로 그야말로 거대한 부처님으로 화강암 산지로 손꼽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석재 700여 톤을 운반하여 1977년 11월에 점안하였다고 한다아침 일찍 청주를 출발 어느덧 낙산사 부근에 이르니 멀리서도 오봉산 정상에 우뚝한 해수관음상이 반갑게 맞이해는 듯 마음을 숙연하게 하였다.낙산사는 원통보전에도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을 모시고 있고 우리나라 제일의 관음성지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늘 지나쳐 듣던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이란 한 구절의 말이 새삼 깊은 뜻을 지닌 깨달음과 자비의 말임을 알았을 때 속으로 한없이 부끄럽기도 하였다. 우리의 삶이란 매일 고통이 일고 쓴 언덕을 넘어야 하기에 그 외로움과 힘듦을 달래기 위해 관세음보살이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일인가? 무엇보다 관세음(觀世音)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고 떠나오기 전부터 며칠이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세상의 소리를 듣는 게 아니라 상시 보고 있다니 얼마나 따듯하고 위대한 의미인가?드높은 해수관음상이 가까워질수록 함께 간 일행은 말을 아끼고 차 안에 정적이 흐른다. 한 가지 소원을 아뢰면 꼭 들어주신다는 기대를 저마다 안고 간절한 모습이다.서둘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원통보전에 들러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해수관음상을 친견하려 더위 속에서도 마음을 가지런히 모아본다. 아름다운 담 옆으로 ‘꿈을 이루는 길’이라는 명패가 보인다. 그 길로 드디어 들어선다.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쌓아온 조그만 돌탑들이 우리 가족 또한 기다리고 있었는지 가만히 미소를 짓고 있다. 이 길로 오기까지 인도하신 부처님께 감사함에 발걸음 하나하나에 의미가 깊었다. 마침 그 길을 지나던 스님이 손녀딸에겐 고운 염주 팔찌를 건네주며 머리를 쓰다듬어준다. 그 또한 뜻밖의 일이어서 기쁘고 고마웠다.작은 숲길을 나서니 고대하던 해수관음상이 우뚝 서 주위를 압도하였다. 두 계단을 올라 해수관음상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손을 모은다. 함께 간 사위도 무슨 소원이 있기에 겸손히 서서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 거룩해 보인다. 무한 자비로우신 해수관음보살님이 그 소원을 들어주시라 나도 옆에 나란히 서서 얼굴을 바라보았다. 천주교 성모님과도 비슷한 관세음보살님은 동해를 바라보며 서 있는 모습이 흔히 볼 수 없는 압도적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표정은 은은하고 깊은 미소로 자비롭게 우리를 내려다보고 계신다. 말없이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으니 해조음이 들리듯 무한한 평화와 고요한 감성이 깨달음으로 일어선다. 바다의 파도같이 언제나 새로운 진리의 음성이며저 세간의 미혹과 어둠 초월한 음성이니관세음보살님은 무심으로 설하므로 묘음(妙音)이고,분별함이 없이 아는 까닭에 관세음(觀世音)이며,청정해 아무런 집착이 없으므로 범음(梵音)이고,그 감응함에 시기를 잃음이 없는 까닭에 해조음(海潮音)이라 부처님의 대자 대비한 설법을 파도 소리에 비유하여 해조음이라고도 한다파도 소리가 비록 무심한 것 같으나, 밀물·썰물의 시간이 어김이 없고, 부처님의 설법도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무명 번뇌를 깨뜨려 준다는 뜻에서 알맞은 비유인 듯하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동해 바다도 해조음을 일으키며 물결 한 자락 한 자락도 해수관음상을 향한다.바다의 파도를 보면 밀려왔다가는 물러가고, 물러갔다가는 다시 밀려오고 하여 항상 새로워지는 것과 같이 나도 비로소 새로워진 마음으로 눈을 크게 떠 본다. 아주 작기만 한 자신 그리고 아집 모든 것들이 부질없음을!해수관음상을 친견하고 나서는데 한쪽에 법종을 걸어놓아 누구나 종을 한번 울려볼 수 있다 하여 용기를 내어본다.사위 그리고 손녀와 셋이 당목을 잡고 동그란 당좌에 치니 아래 움통에서 소리가 나 길게 울리는 것이다. 마음에 깃든 모든 고뇌를 종소리에 실려 보내고 같이 간 사위의 간절한 소원도 또 한 번 빌어 주었다. 사는 것은 매일 쓴 것의 연속이며 그 언덕을 잘 넘어야 하는데 그 괴로움을 다 보시고 먼저 헤아려 주시는 관세음보살 그 아름다운 부처님을 친견한 낙산사의 여름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박종순 전 복대초 교장·시인? 자세히보기 칼럼 칼럼 2023.08 스무살 증평 ? 스무 살 증평산수가 수려한 증평은 정주 여건이 빼어나다. 자전거 타기에도 좋은 환경이다. 생활권이 증평으로 학창 시절에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자전거로 통학하며 장뜰 사랑을 키웠다.애정이 가득한 증평군이 개청 20주년을 맞았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처음으로 주민의 힘으로 '증평군'이라는 가슴 벅찬 이름을 얻은 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다. 또 지역 발전의 계기가 되었던 충북선 철도가 개통되고, 증평역이 설치된 지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2003년 8월 30일 출범 당시 소멸 1순위라는 우려를 불식하고 급성장하여 도시국가 싱가포르를 닮았다고 해 ‘대한민국의 증가포르’로 불릴 만큼 위상이 달라졌다.지금 우리는 더 큰 증평, 더 강한 증평으로 나아가기 위한 갈림길에 서 있다. 스무 살 청년 증평은 지난 20년 동안 보여준 눈부신 성과를 바탕으로 미래 100년을 위해 더 강하고 큰 증평을 만들고자 군민이 하나가 되어 열심히 뛰고 있다. '군민 중심 새로운 미래 증평'을 군정 비전으로 정하고 1년 동안 증평 지역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이재영 군수는 불철주야 소명을 다해 왔다. 주민과 소통하고 주민이 행복한 삶의 터전을 만드는데, 모든 역량을 집중하며, 증평만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그 결과 국가 균형 발전 우수사례 전국 최초 8회 최다 수상, 지방자치단체 정부 혁신평가 5년 연속 우수기관 선정, 전국 군 단위 유일 재난관리 평가 1위에 선정되는 등 활기 넘치고 밝은 미래가 보인다. 괄목할 성과에는 무엇보다 주민들과의 신뢰와 지지가 중요하다 하겠다.군정 20주년 평가회에서 증평군의 성과 중 놀라운 것은 인구와 출생아 증가율 도내 1위, 고향사랑 기부제 도내 최초 1억 원을 돌파한 것이다. 2021년 12월 말 인구가 3만 7,003명이었는데 2023년 5월 3만 7,342명으로 0.92% 증가해 충북도 내 최고의 인구 증가율을 보였다. 출생률 또한 2022년 5월 말 71명에서 2023년 5월 말 94명으로 32.39%의 증가율로 출생 증가율 또한 도내 최고로 증가했다. 또 올해부터 시행된 고향사랑 기부제 누적 모금액 또한 도내 최초 1억 원을 돌파하였다. 더욱이 산업·경제 분야에서는 B·I·G 산업 육성 방향 제시, 군 단위 최초 수도권 투자유치 설명회 개최, ㈜넥스 프레스 외 11개 사에서 8,318억 원 투자유치, 도안2테크노밸리 착공 및 2개의 신규 산업단지 조성 추진, 공공 임대형 지식산업센터 타당성 심의 통과 등 미래 100년 산업 생태계 기반을 구축했다.농업·농촌 분야에서는 체류형 스마트 농촌 조성 사업 추진, 전국 최초 드론 자율방제 및 자율 작업 트랙터 활용 스마트 빌리지 추진, 농촌 공간 정비 공모사업 선정 등을 통해 미래 농업·농촌 기반을 다졌다. 문화·체육·복지 분야에서는 메리놀병원 시약소의 군 최초 충청북도 등록문화재 지정, 평생 학습도시 재지정, 증평종합운동장 건립 및 2027 하계 세계대학경기 대회 축구 대회 유치, 장애인 주간보호 센터 개관 및 특별교통수단을 확대했다. 안전과 행정 분야에서는 재난관리 평가 국무총리 상 수상, 행정 종합 관찰 제 및 소통 공감 행복 증평 밴드 운영, 법인 무인 발급기 설치·운영, 10㎝ 턱 낮추기 추진 등을 통해 군민 생활 불편을 해소해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그 밖에도 균형 발전 우수사례 전국 최초·최다 8회 수상, 정부 혁신 평가 우수기관 5년 연속 선정, 공약 실천 계획 평가 A(우수) 등급 선정 및 2022 매니페스토 약속대상 최우수 수상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특히, 코로나19는 물론 구제역과 과수화상병 발생에 대해서도 민·관·군이 상호 협력체계 구축을 통한 신속 대응으로 전염병을 조기에 종식함으로써 방역의 전국적 모델 도시로 평가받기도 했다.군민들과 소통하기 위한 온라인 소통 창구 '소통 공감 행복 증평 밴드'의 운영으로 군민들의 생활 불편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였다. 새로운 미래 증평을 만들기 위해 민선 6기 출범과 함께 추진한 밴드로 신속한 민원 처리 창구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 밴드 게시글에 불법 현수막·쓰레기 처리, 교통 표지판 설치 등 단순한 민원부터 증평 야구장 위치 수정, 증평군 균형 발전 제안까지 다양한 사안에 대해 복잡한 절차 없이 해당 부서에서 최대한 빨리 처리하고 결과를 알려주었다. 이렇게 처리한 건수가 700여 건이 넘는다고 하니 경이한 일이다. 이처럼 주민들과의 소통 공감 행정을 인정받아 지난해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가 주최한 '2022 매니페스토(지방선거 부문) 약속대상'에서 선거공약서 분야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어서 지난 4월에도 '우수상'을 수상했다. 앞으로 군민과 소통 공감을 통해 주민들의 불편 사항을 해소하고 군민 중심 행정에 더욱더 힘쓰겠다.라는 의지 표명에 군민의 한 사람으로 가슴이 뿌듯하다.증평군은 2003년 군 개청 이래 모든 분야에서 꾸준히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문제로 인한 지방 소멸을 우려하는 어려운 현실 가운데 증평군의 지속적인 인구 증가율은 매우 고무적 현상이다. 증평군만의 인구증가 비결은 청년의 요구(Needs)를 충족시켜 주는 기본적이고 안정적인 인구정책에 있다. 더욱이 청년 세대를 위해 다양한 시책을 시행하고 있다. 증평군의 인구정책은 먼저, 전입 지원금 20만 원을 지급하며 신혼부부 주택자금 대출이자 지원, 청년 월세 지원 사업과 출산 육아 수당,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 등에 있다고 본다. 또 생활인구를 늘리기 위해 전통시장, 학군, 교통 등에 있어 증평군과 동일 생활권을 형성하고 있는 북이면, 초평면, 청안면, 사리면, 원남면 주민들을 대상으로 생활인구 시범사업에 나서고 있다. 증평군 군립 도서관의 신규 회원 가입 범위를 기존 증평군민에서 인접 지역주민들로 확대하고 있다. 출산 육아 수당 1,000만 원도 지급하고 있다. 또한 좌구산 휴양랜드의 숙박료 할인 혜택도 제공하고 있다. 앞으로 증평군은 정주 인구는 물론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위해 생활인 구의 증가를 위한 다양한 시책으로 인구 5만 자족도시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증평군의 미래 100년을 위한 미래전략산업은 고무적이다. "증평이 작다고 하지만 면적으로 보면 81.83㎢로 전국 226개 시·군·구 자치단체 중 156번째이다. 지난 2003년 군 개청 이전 오래전부터 주변 북이, 청안, 사리, 초평, 등의 생활권 중심지 역할을 해온 지역으로 지리적으로 충북도의 중심, 대한민국의 중심에 위치해 무궁한 발전 가능성이 있다. 증평군이 앞으로 발전하려면 미래 100년을 내다보는 기반 구축 사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 도, 타 지자체 등과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증평의 외연을 확장하고 미래를 향한 도약을 이끌 수 있는 각종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먼저 중부권 동서 횡단 철도 사업이 제5차 국가 철도망 구축 계획에 반영되고, 예비 타당성조사 면제사업으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해당 지역들과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한다. 또한 충북선 철도 고속화 사업과 연계한 증평 정차 사업 및 남북 6축 및 동서 5축 고속도로 사업 등을 통해 교통, 물류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기반 조성을 위해 정성을 다하고 있음이 눈에 띈다. 이뿐인가. 기능성 바이오, 반도체, 2차 전지 등 전략산업을 육성하고 관련 기업을 유치함은 물론 산단 조성, 지식산업센터 건립 등을 통해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여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일반산업단지와 도안 테크노밸리 등 지역의 산업 인프라 또한 지속해서 확충하고 있다. 벤처기업과 중소기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게 될 지식산업센터 건립 추진과 대학과 연계를 통한 기업의 인력 공급 시스템도 함께 구축하고 있음이 돋보인다. 아울러 지역의 정주 여건 개선과 필요한 인프라를 보완하기 위해 복합문화예술회관 건립, 스포츠 테마파크 조성, 원도심 도시재생 사업의 청사진을 펼쳐 나가고 있다.개청 20주년이 되는 스무 살 증평은 ‘더 살기 좋은 증평, 더 강한 증평’으로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미래 100년을 향해 거듭날 것이다.?/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인테리어디자인학과 객원교수 자세히보기 칼럼 1234545 다음 5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