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한(1873-1932) | |
내용 |
![]() 그는 대한제국의 육군참위로 있던 중 일제의 강압에 의해 군대가 강제로 해산을 당하게 되자 의병으로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다가, 일제의 병합이 이루어지자 고향인 진천으로 내려와 농민계몽운동에 몸바쳐 왔으며, 전국적으로 3·1운동이 전개되자 진천읍내 이상직 등과 함께 4월2일을 기해서 온 군내가 일제히 시위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고 태극기를 제작하여 광혜원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니 군중이 2천여명이나 되었다. 이후 윤병한은 3년여의 옥고를 치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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